라이프

2022.12.08 00:02:17

토스카나의 빛나는 별, 브루넬로디몬탈치노

와인1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취재기


1990년대 말, 나는 로마의 어느 피자집에 들른 적이 있다. 이곳은 세계식량농업기구 출신의 한국인 여성이 운영하는 곳으로 맛 좋기로 유명했다. 내가 와인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안 그분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unello di Montalcino)를 취재해 보라고 추천했다. 요리 학교에서 그 와인을 간단히 배우기는 했지만, 당시 학교가 있던 지역에서는 바롤로(Barolo) 와인이 너무 유명해서 상대적으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지역성이 아주 강해서 자기 고장 외의 것은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대체로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여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취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나는 로마의 소믈리에 코스에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브루넬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였다.


와인은 흔히 테루아르라고 말한다. 테루아르는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의 생산 환경이라고 보면 된다. 포도 품종, 기후, 토양, 여기에 생산자의 기술을 더해서 해석한다. 자, 이런 와인의 특성은 결국 ‘지역’을 이해해야 빨리 접수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가능하면 현지에 가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냥 칠레 와인이라고 ‘퉁쳐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칠레 국토의 남북 길이는 무려 6,435km에 달한다. 거기에다 산악과 해양성의 여러 기후가 있다. 칠레 와인은 대형 자본에 의해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보편성을 제공하고 있지만, 매우 다채로운 와인이 나올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점차 칠레 와인도 이런 지역성을 내세우며 만들어지고 있고, 사람들도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요새 인기 있는 칠레 와인은 과거의 묵직한 보르도식 레드 와인이 아니라 섬세한 테루아르를 표현하는, 더 추운 지역에서 온 품종의 와인이다. 피노 누아, 소비뇽 블랑 같은 것이다.


와인


좋은 와인의 특성


이런 특별한 조건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리 크지 않은 지역에 불과한 토스카나만 해도 하나의 와인 스타일로 정의하기 어렵다. 키안티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이웃이다. 둘 다 토스카나의 유명 와인이다. 그런데 키안티는 병당 10달러 미만이 대부분이고, 브루넬로는 병당 100달러가 기본이고 수백, 수천 달러까지 이른다. 어쨌든 나는 몬탈치노로 갔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란 ‘몬탈치노 지역의 브루넬로 와인’이라는 뜻이다. 몬탈치노는  없으면 접근하기 어렵다. 피렌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미지의 땅으로 가서 취재를 했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사실 오래 전부터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바롤로나 보르도 와인만큼은 아니었다. 토스카나 와인은 대체로 싼 가격의 테이블 와인이라는 인식이 불과 40, 50년 전까지 일반적이었다. 프랑코 비온디 산티 (1922~2013)가 1888년 빈티지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개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프랑코 비온디 산티는 몬탈치노 와인의 오늘을 있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1994년 와인 저널리스트, 와인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1888년 빈티지를 개봉, 그 놀라운 가치를 입증했다. 이런 극적인 에피소드가 와인 세계에는 흔하지만 이렇게 해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그저 좋은 이탈리아 와인에서 세계적인 와인으로 진급하게 된다. 프랑코 비온디 산티는 그 후손에 의해 비온디 산티라는 동명의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로 남아 있다. 아주 값이 비싼 걸로도 유명하며 한국에도 소량 유통된다.


몬탈치노 마을은 아주 작다. 요새와 성이 있어서 2004년 유네스코 보존 마을에 등재되었다. 토스카나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 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아무 때나 들를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지 않다.와이너리가 작고, 생산자들도 ‘수줍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마을이 작아서 숙소도 적고 비싸다. 피렌체나 인근의 호텔에서 묵으면서 자동차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와인도 기본적으로는 토스카나 레드 와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지오베제라는 품종을 쓰는 것도 키안티나 그보다 대체로 윗 등급으로 보는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 ( 말하면 클론의 일종인 산지오베제 그로소를 쓴다).


그러나 더 깊고, 그윽하며, 숙성기간이 길고, 중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많은 와이너리의 제품이 들어오고 있다. 아무래도 싱글 빈야드나 ‘리제르바’가 붙은 제품이 귀하고 비싸다. 통상적인 엔트리급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와인숍 가격으로 10만원대 초반부터 시작한다. 필자가 권하기로는 20만원 정도는 되어야 이 와인의 특성을 충분히 보여준다고 하겠다.물론 훌륭한 와이너리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대체로 좋은 품질을 유지하며, 뛰어난 빈티지가 아닌 와인은 가격이 비교적 낮게 형성되는데 그것이 마셔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출처: The Sage Investor 71호

박찬일 로칸타 몽로 셰프 겸 음식 칼럼니스트